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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이 가득한 박일정의 도화 (陶畵)
최근 남도작가들 사이에는 우리 신화를 알고 이같은 신화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표현하려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가?
오늘의 글로발(지구화)화한 시대에 서울이라는 대도시 공간의 삶은 국제적 유행의 첨단을 좇아서 살며 광주비엔날레를 위시하여 각종 국제전이 난무하는 판에 이에 적응하는 것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작가들이 있다면, 이같은 유행에 아랑곳 없이 처음부터 자연을 상대로 무지하게 ‘촌놈’의식으로� 살아가는 지역작가들이 있다.
한마디로 도시유행을 좇는 첨단 작가군과 자연을 뿌리로 삼는 생태적 작가군이 있다고 나는 분류한다. 그리하여 태초부터 시작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문명의 속도처럼 진보하는가,� 자연처럼 되풀이 하는가 ?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 속에 근원적인 질문과 해답을 풀어놓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그림세계이다.
태초에 신화가 있었다는 말은 바꾸어 인간에게 근원적인 상상력이 있었다는 소리이며 예술은 이같은 상상력을 근거로 발동하는 것이므로 신화와 예술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쌍생아이다. 그리고 신화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상상력의 집합, 모음집인 것이다. 노자(老子) 가 말하는 ‘ 가고 오고 되풀이 하는 것이 도의 근본이며 자연을 본받는다’ 고 말하는 사상의 요지도 신화의 본질을 함축한다.
도시 공간에 파묻혀 사는 작가들은 이같은 노자의 사상이나 신화를 모른다. 오직 도시 의식을 탈출하여 자연을 해방구로 삼을 때 그것을 해득할 수있는 실마리를 얻는다. 이 점에서 아직도 자연을 안고 사는 지역- 남도작가들은 행복하다. 그들 속에 희망이 보인다. 모든 것을 경제 가치로 따지는 빈부의 양극화시대에서 영혼의 희망을 보여주는 마지막 보루가 예술이기 때문이다.
동화는 단순히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이 마음으로 자연을 보고 상상력을 키우는 점에서 신화의 또 다른 모습이며 노자가 말하는 순수한 동심은 바로 도의 접근 태도이다. 어른들의 눈 속에 가리어진 세상을 한 꺼풀 벗겨 보여주는 이야기,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전부터 박일정 작가 그림을 눈여겨 보면서� 다른 작가들과 다른 동심적 상상력, 남도적 자연과 풍물을 동화적으로 엮을 줄 아는 소박스런 마음을 높이 산다.
박일정의 그림재료는 특이하다. 처음에 도자기에 열중하더니 도자 문양에 상투적으로 들어가는 문양 격식을 버리고 자기만의 그림을 새겨넣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그림을 회화적 평면으로 넓히기 위하여 도자 흙을 밀가루반죽처럼 두드리고 넓히고 질박한 도자의 재질감을 살리면서 새기고 덧붙이는 얇은 부조 형태 속에 채색 안료를 발라� 구워낸 도화(陶畵)라는 새로운 그림 장르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종래의 도자 형태도 아니고 일반적 평면회화도 아니며, 격식화된 타일그림도 아닌, 요즘말로 섞어쓰기 , 퓨전화된 형태이다.� 박일정 세대다운 특성이 퓨전시대라면 혼합의 재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굳히 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박일정에게는 남도적 지역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도화에 나타난 갈색 톤은 갯벌 흙을 연상시키며� 햇빛처럼 반짝이는 흰빛도 물빛을 머금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지역에 흔한 물고기, 망둥이, 낙지, 지렁이를 위시하여 꽃, 풀, 새, 나무 등을 크로즈업하면서 그 안에 우리가 사는 삶을 축약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풀잎 속에 풀잎보다 큰 동물과 사람과 새들이 사이 좋게 모여산다. 크고 작은 자연물은 서로가 의존하며 공존한다. 사람사는 이치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들어있다는 역설적인 상상력을 보여줌으로써 리얼리즘을 벗어난 동화적 환상, 신화적 본성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리얼리즘은 작가적 상상력의 한계를 방증하는 것이며 모든 자연은 크고 작음을 떠나서 인간중심적 시각을 버릴 때 신화적 상상력이 나타난다. 따라서 종래의 리얼리즘적 표현 방식은 기존 시각방식에 관습화된 태도이지 예술의 자유로움은 아닌 것이다.
항상 보이는 것 시각 넘어로 자연을 상상하는 것이 남도예술의 새로움을 여는 것이며 여기에 우리의 신화가 숨어있다는 것을 나는 늘 강조해 왔다.
이 점에서 박일정의 동심 가득한 도화는 상상력이 신선하고 재미있으며 새로운 개척지를 열었다는 점에서 나는 기쁘게 격려사를 보낸다.
원동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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