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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놀다
 도화헌    | 2010·02·08 12:21 | HIT : 5,011
흙과 놀다
평면 흙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 박일정(41)
2010년 02월 05일 (금) 20:35:49 범현이baram@siminsori.com

   
▲ 박일정 작가.
프롤로그

작가를 만나러 목포로 가는 길은 늘 즐겁다. 통과해도, 또 통과해야 할 연이는 터널. 터널 안에서 오렌지 빛으로 다가오는 환한 무중력을 즐긴다. 무중력의 그곳에서 잠시 방향을 잃고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느낌을 받는다. 땅 속 어디선가, 터널 끝에서 마주 와 꽂히는 빛처럼 금빛 출렁이는 착각에 빠진다. 수 천 수만의 생각들이 먼지처럼 떠다니고 앞으로 다가 올 시간들을 돌려 세우고 싶어진다. 눈을 천천히 감고, 다시 천천히 돌아간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의 감각들에게 묻는다. 내가 보이시나요?

월선리 예술인촌에 들어선다. 여기저기 보이는 담장들마다 연등(蓮燈) 하나씩 목에 걸고 있다. 노랗고 빨간 연등. 눈이 부시다. 갓 시집 온 새색시 같다.

농로를 따라 구불구불 가다 깊고 푸른 물을 만난다. 작은 저수지다. 너무 차가워 손을 담글 수도 없는데 차에서 내려 한 참을 빙글빙글 물을 보며 걷는다. 푸르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물빛은 겨울이면 왜 이리 처연한 빛이 되는 건지. 너무 푸르게 깊어 무릎을 굽히고 주저앉아 넋을 잃는다. 바람이 물에 나이테를 만들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멀리, 농가와는 다른 하얀 지붕이 보인다. 작가의 작업실이다. 천장이 넓고 햇빛이 공간 가득 들어차 따뜻하고 안온하다. 네모로 만들어진 무쇠난로 속에서 탁탁! 나무가 타며 신음소리를 낸다. 나무 타는 냄새가 향기롭다.

종이에서 흙으로 공간이동 - 상상의 나래를 펴다

전공은 한국화이지만 현재는 흙과의 놀이가 더 즐겁다. “겸재 정선으로 이어지는 매우 사실적인 한국화만을 그리다 보니 무언가 모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답답해져 왔다. 머릿속의 상상은 늘 즐거운데 그림 안, 사실적 기법이 나를 밀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릴 때마다 비슷해 보이는 진경산수가 오히려 내 손에서 붓을 멀어지게 했는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 작품명 <산수팔자도(도자·혼합재료, 2006)>

몇 년을 깊숙이 안착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먼지처럼 떠돌았다.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은 없었다. 다양한 직업을 섭렵한 뒤, 서울에서 다시 강진으로 발길을 돌렸을 때 비로소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만났다. 바로 흙과의 만남이었다.

“처음 흙을 만나고 안료를 사용해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다. 도자기에 그려지는 회화는 또 다른 맛으로 여겨졌지만 역시 내 마음을 다 채워주지는 못했다. 회화에, 조각에 도자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보며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나만의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도자기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혹, 도자기의 형태를 하고 있어도, 매대 위에 올라있는 도자기여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꽃처럼 꽃잎을 품고 있는 도자기를 들여다보면 사실은 꽃잎이 아니라 켜켜이 눈에 보이는 산과 산이다.

원근법을 무시한 채 도자기의 형태를 빌어 산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 그대로 조형으로 살아나 있다. 멀리서 떨어져 얼핏 보면 연꽃이 막 피어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낮은 산에서부터 높은 산까지 도자기의 모습 위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

흙의 평면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다

아주 어릴 적, 해거름 무렵 엄마가 찾아다니며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나뭇가지로, 혹은 골목 어디에선가 주운 깨진 사금파리로 땅바닥에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집중해 그림을 그렸던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앉아있던 자리가 다 그려지면 엉덩이를 움직여가며 아주 조심스럽게 낮은 이동을 해가며 산도 그리고, 골목 입구 고샅도 그리고, 마을 아저씨 지게도 그린다.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장구치던 마을 근처 냇가도 그리고 구구단을 외우던 친구들의 얼굴과 책도 그렸다.

   
▲ 작품명 <느러지 느러지게(혼합재료, 2009)>

작가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아주 어릴 적, 잊혀 져 가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맞다. 작가는 흙과 어릴 적 놀았던 그 기억처럼 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작업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작가가 하는 일은 흙은 평평하게 장지처럼 다지는 일이다. 공기를 빼고 성근 모래들도 골라낸 후, 순수한 흙만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긴 장지를 만든다.

흙으로 만들어진 장지가 완성이 되면 작가는 그 위에 자신이 즐거운 상상을 했던 어릴 적 뛰어놀며 골목의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낸다. 골목도 그리고 고샅에 있던 돌도 그리고, 학교 갔다 오면 꼬리 흔들어주던 강아지, 이제는 너무 멀리 와 흔적도 아스라한 친구들의 손도 그린다.

   
▲ 작품명<투사(도자, 2008)>, <들개(도자, 2006)>, <멧돼지(혼합재료, 2005)> (왼쪽 위부터)

너무 그릴 것이 많아 작은 조각들을 따로 구워 모자이크로 완성한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다시 하나로 모아져 거대한 세상이 만들어진다.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모두 다르지만 모아지면 하나의 간절한 메시지를 담아

그림이 아니라 소설이다. 작게 구워낸 자기 안에는 입가에 웃음이 스미도록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에서부터 현재의 생활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낼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이 아닌 자연인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난다.

   
▲ 작품명 <홍어(도자·혼합재료, 2009)>

조각 하나, 손바닥 하나에도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소설이 서사로 이어진다. 하늘과 바람도 보이고, 푸른 들판과 작은 언덕도 보인다. 자연이, 자연을 닮아가려하는 모습이 온전하게 담겨있다. 그들 스스로 끈끈하게 이어지며 이야기를 나눈다. 누가 보아도 이해가 쉽도록 이야기를 풀어내 준다.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조용하면서 강한 의지로 그대로를 보여준다.

구워지다가 설사 금이 가고 깨져도 좋다. 금이 가면 가는 대로, 깨지면 깨지는 대로 액자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조형을 만들어 낸다. 못생긴 사람도 잘 생긴 사람들 사이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이치와 같다. 금이 가면 다시 모자이크로 맞추면 되고 깨진 것들을 타일을 붙이듯 형상을 만들어 가면 된다.

작가는 “처음에는 많이 속이 상했다. 정말 온 정성을 들여 성형을 하고 흙 판에 그림을 그리고 잘 말려 가마 안에 넣었는데 막상 가마 안에서 구워져 나온 것은 금이 가 있거나 깨져 있었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금이 가거나 깨진 작업들을 보며 감사해 한다. 다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를 생각하며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고 말을 잇는다.

   
▲ 작품명 <홍어 도시에 놀다(도자·혼합재료, 가변설치, 2008)>

자리를 차지하고 놓여지는 것이라는 도자기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버렸다. 작가가 작업한 도자기는 유리를 낀 액자 안으로 들어가 벽에 걸리기 때문이다. 액자 속으로 들어 간 도자기이다. 캔버스에 도자기를 붙이는 동안 무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는 이미 염두에 두었다. 건조하면서 도자기 뒷면을 격자무늬로 홈을 파 내 무게를 이미 줄였기 때문이다.

흙도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분청토, 청자토, 조합토, 백자토 등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재료면 모두를 사용할 예정이다. 청목유, 철류를 주로 사용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유약 역시 장작 유에서부터 소금 유, 잿 유까지 다양하게 사용할 예정이다. 자신만의 기법으로 자신만의 소설을 흙으로 만들어진 장지 안에 써 내려갈 작가는 우리의 전통기법으로 작품을 구워내기 위해 최근에는 장작 가마도 만들었다.

“앞으로도 자연에서 얻어지는 재료들로 자연을 표현하고 싶다. 너무 멀리 가지 않고 지금까지 해 온 작업들과 같이 생활 속에서 주제를 찾으며 순수한 우리의 자연을 표현하며 색유리나, 안료 등을 사용해 여러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색 작업을 하고 싶다”

작가는 2010년 목포에 개관하는 대안 공간 개관전을 비롯해 서울 홍대 앞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문의 : 010-6622-1993

에필로그
상처가 생겼다. 상처가 아무는 동안 간지럽다.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면 또 다시 상처가 생긴다. 겉으로만 낫는 상처는 속으로 곪는다. 겉과 속이 한 겹처럼 나아야 한다. 상처는 어루만지는 순간 붉은 양파처럼 겹겹이 벗겨지는 것이다. 풀어지면서 배운 내를 내기도 한다. // 상처가 상처끼리 만나면 무디어진다. 상처는 상처를 알아본다. 상처 없이 살 수 없다며 상처를 입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이미 한 몸이 되어버린 상처는 벗기가 어렵다. 속옷 갈아입듯 그와 나 사이의 간극도 자주 갈아주어야 아문다. 상처는 같은 자리에 재발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처는 상처로 아물 수밖에 없다. - 詩상처. 作문정영

둠벙 같은 조그만 저수지에 앉아 깊게, 낮은 목소리로 흐르는 물의 유영을 본다. 바람이 세차게 등을 치며 말한다. 무거워 힘든 것만이 가벼워질 수 있어. 지도 같은 손바닥을 쑥 내미는 사람에게 손금을 새기며 살아야 해. 알 수 없는 강물이 소용돌이 치고, 여러 겹의 물살이 정지되어 있다.

어둠이 깊어갈 수록 물이 뒤척이며 다가와 속삭인다. 영혼의 무게만으로 살고 싶을 때가 있었지. 사랑이 청람(靑嵐)처럼 일렁이더니 그 그늘 가시로 박혔나봐. 내 몸을 떠나버린 사랑, 있어도 그뿐, 없어도 그뿐인.

이 세상 끝이 산 너머 어디인지 알지 못한 채 돌계단을 오른다. 조각난 하늘을 이고 숲이 이끄는 대로 몇 굽이를 흐른다. 물도 제 몸을 밀며 스스로 흐른다.

살아있으니 슬픈 것이니.

 

출처 : 시민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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